‘핵전쟁의 매듭 묶은 사람도 풀지 못한 전쟁 온다’
“우리도 당신도 전쟁 매듭을 더 이상 당겨선 안된다. 어느 순간에는 묶는 사람조차 매듭을 풀 수 없는 순간이 온다. 핵전쟁 상황 만들 의사가 없다면 매듭 풀기 위한 논의를 합시다. 우리는 준비가 됐습니다.”
인류역사상 핵전쟁 위험이 가장 높았던 쿠바 핵미사일 위기의 순간 소련 흐루시쇼프 서기장이 케네디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이다. 친서를 계기로 미-소는 치열한 외교전과 공식, 비공식 루트를 통해 서로 양보하면 합의를 이끌어내 인류 최악의 핵전쟁을 피할수 있었다. 핵전쟁은 인류가 공멸하는 전쟁이기에 승자와 패자가 없다. 모두 패자가 된다.
흐루시쇼프 서기장은 국가간의 전쟁이 시작되면 전쟁의 매듭을 시작한 자조차 풀지못하는 상황이 온다는 지적은 시기 적절했다. 개인의 다툼조차 싸움이 심해지면 이미 화해할 시기를 놓쳐버려 평생 원수가 된다. 하물며 국가간의 일은 어떠겠는가.
사라예보 황태자 부부 암살로 시작된 제1차세계대전(1914-1918)과 나치 독일의 폴란트 침공으로 야기된 제2차 세계 대전(1939-1945), 두 전쟁으로 대략 1억명이 사망했다.
‘다극체제에서 양극체제 전환이후 핵무기 개발 경쟁 심화’
미국은 2차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2기를 투하했다. 상상을 초월한 피해를 입은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다. 인류에게 핵무기가 사용된 첫 사례로 가공할 핵무기 파괴력 앞에 인류는 두려움에 떨었다. 미국은 가공할 핵무기 사용에 앞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미국의 대피령 경고장을 무제한 뿌려 민간인 피해를 줄이려 했지만 대부분 경고를 무시했다. 당시에는 그러한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핵무기 개발 경쟁은 1945년이후 다극체제에서 미-소 양극체제로 변화이후 더욱 치열해 졌다. 소련이 1949년 원자폭탄 성공이후, 1954년 미국이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고, 이에 질세라 소련은 1955년 더 강력한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 1957년에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까지 성공했다.
미-소간 냉전은 표면적으로 군사력 경쟁이었지만 이면에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한 다툼이었다. 냉전의 1차 폭발 기점이 한국전쟁이었다. 한국전을 통해 소련은 한반도를 공산화시키려 했고 이에 미국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16개 연합국을 결성해 남침을 막아냈다.
미-소는 한국전쟁이 3차세계대전으로 확전을 막기 위해 서둘러 당사국인 한국의 통일 의지를 무시한 채 1953년7월 휴전협상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한국 전쟁이후 미-소 경쟁이 극점에 달했던 사건이 바로 쿠바 핵미사일 위기였다.
‘소련, 미 앞마당 쿠바에 미 주요도시 사정거리 핵미사일 배치’
1962년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는 개방과 팽창의 두얼굴 소련 흐루쇼프서기장이 공산화된 히로시마 원폭의 70배에 달한 위력인 핵탄두 99개를 쿠바에 보내 소련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면서 발생했다. 쿠바는 미국의 앞마당이다.
미국 첩보기가 소련의 핵탄두가 장착된 준중형탄도미사일이 쿠바에 배치된 사실이 밝혀진후 당시 케네디 미 대통령은 쿠바 전면 봉쇄정책을 단행했다. 핵무장 소련 함정과 미 함정간에 카브리해에서 대치는 세계를 숨막히게 했다.
1962년 10월 16일부터 28일까지 13일간 미국과 소련, 전 세계는 핵전쟁의 공포와 긴장감에 질렸다. 최악의 핵전쟁 직전에 양국 지도자간의 양보와 타협으로 핵전쟁은 막았지만 그 공포는 잊지 못했다.
쿠바 핵미사일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은 미-소는 핵전쟁으로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공포를 깨닫고 양측의 노력으로 데땅뜨(긴장완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핵전쟁의 위기는 그 이후에도 판단 착오로 수차례 찾아 왔지만 그때마다 고비를 넘겼다.
‘미 국방장관, 핵폭발시 1시간내 미국1억명-소련1억명-동아시아 1억명 사망 예측’
당시 맥나라마 국방장관은 미 의회에서 소련의 핵미사일이 미국을 공격하면 1시간내 1억명이 사망하고, 미국의 공격으로 소련에서도 1억명이 사망한다고 보고했다. 또 당시 미국의 핵전략이 공산권 국가 전체를 공격토록 계획되어 중국과 북한 등 동아시아에서도 1억명이 사망한다는 예측을 내놨다. 인류 최악의 전쟁이 일어날 뻔 했다.
핵무기 실제 사용은 1945년 일본이 처음이다. 그런데 1900년전에 기록된 성경에 핵폭발시 발생하는 현상을 자세히 예언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체질(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라”고 기록했다. NIV성경에 체질이 ‘the elements’ 원소로, 다른 성경에는 물질로 표현했다. 핵 폭발시 초고온으로인해 공기와 주변 자연물의 원자 구조가 파괴되는 현상을 설명했다. 당시에는 생물학적으로 원소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1억도의 초고온에서 원자 플라즈마현상 성경예언 입증, 스가랴 예언도’
‘성경 핵전쟁 예언 경고 이유 ’예비하라‘ 메시지’
핵폭발시 중심 온도가 순간이지만 1억℃까지 치솟고 이때 모든 원자의 구조가 파괴되어 이온화되면서 플라즈마 상태가 된다. 원자가 타는 상태를 넘어선 존재 자체가 파괴된다. 성경은 핵폭발시 현상을 현대과학적 기법으로 기록했다. 이뿐만 아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bc 520년 환상을 통해 선민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사람에게 창조주 여호와가 내릴 재앙을 기록했다.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속에서 썩을 것이요”라고 마지막 전쟁을 예언했다.
이 당시의 전쟁무기는 칼과 창, 화살이 주를 이뤘다. 사람이 서서 육체가 썩어내려 죽을수 있는 상태는 핵폭발이외 다른 무기가 없다.
1983년에 상영된 핵전쟁을 다룬 영화 ‘The Day After(그 날이후)’는 핵전쟁의 공포를 실감나게 보여줬다. 사람이 창문에 서 있는 상태에서 핵폭발로 육체가 분해되어 뼈만 남게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실제 핵폭발시 훨씬 더 심하다는 표현과 함께 말이다. 성경은 어떻게 수 천년후의 핵전쟁을 구체적으로 기록했을까? 정말 진실로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성경에는 2600년전 기록된 에스겔과 1900년전 사도요한이 기록한 요한계시록에도 핵전쟁이 매우 자세히 기록됐다.
성경에는 세계 3차대전의 시작점과 원인, 핵전쟁이 어디에서 일어나고, 어느 국가들이 참여하는지 자세히 기록되었다. 성경은 왜 핵전쟁을 기록했을까? 단순하게 겁을 주기 위함일까? 아니다. 예비하라는 메시지이다. 핵전쟁을 피할수 있는 길을 성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시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