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연합, 십자가의 죽음연합과 부활의 연합 모두 이뤄져’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삶의 과정이 성화(sanctification)이다. 성화의 삶을 살아 가는 힘의 근거, 원동력은 그리스도와 연합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스도와 연합이 없이는 정상적인 신앙 성장의 길을 가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스도와 연합은 두 가지다. 첫째가 십자가에서 죽음의 연합이며, 두 번째가 그리스도와 부활의 연합이다. 이 두가지 연합이 구원받을 당시 개인에게 성령이 임할 때 실제 이뤄진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실을 알지만 상징으로 안다면 신앙생활의 핵심 교리를 놓치면서 성경의 중요구절을 이해할수 없게 된다. 오직 성경이 말하는 의미를 파악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것이 믿음이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상징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연합, 죄성의 옛사람 확실히 죽었다’
성경에서 신앙생활의 핵심중 핵심이라 할수 있는 갈라디아서 2장20절. 죄성을 지닌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선포한 기록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옛사람(NIV 옛자아 old self)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 옛사람이 십자가에 죽었다 함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이룬 복음과 상반되는 내용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면 다행스럽다.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에게는 당연한 의문이다. 필자도 오래전 그리 생각했다.
실제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십자가의 복음을 완벽하게 완성한다. 그리스도와 두가지 연합된 사실을 아는 성도와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은 성도간의 신앙 성장 차이는 현격한 정도가 아니라 놀라울 정도의 차이가 난다.
그리스도인중 상당수가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성의 옛사람, 옛습관이 내 안에 그대로 존재한다고 오해한다. 갈라디아서2장20절을 상징으로 생각하고 그리스도 공중재림시 그때 몸의 변화가 이뤄지는 구절과의 오해에서 비롯됐다.
‘십자가에서 이뤄진 외적- 영적 사실 주목, 십자가의 피흘림과 죄사함’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옛사람은 영적으로 실제 죽은 각사람의 옛 자아이다. 옛 사람이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죽을때도 나도 영적으로 연합되어 나의 옛사람이 죽었다. 우선 십자가의 복음을 생각해 보자. 십자가에서 이뤄진 복음은 외적인면과 영적인 면이 함께 공존한다.
외적인 면은 2000년전 골고다 언덕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리는 처참함 모습을 말한다. 영적인 면은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있던 제자들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이후 제자들조차 모두 흩어졌다. 예수께서 부활을 자주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믿지 않았다. 영적 사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야 53장의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예수께 담당시킨” 영적 사실이 십자가에서 문자대로 이뤄졌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께서 침례를 받기위해 나아오는 모습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한 바로 세상 죄와 우리 무리의 죄가 동일한 의미다.
세상이 창조된이후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모든 사람의 죄를 그리스도께서 짊어졌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면서 ‘다이루었다’는 선포는 세상죄 용서를 완성했다는 뜻이다.
‘죽은 자만이 죄에서 벗어나기에 옛 사람이 죽었다’
로마서에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하심을 얻었다”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죄와 다투면서 평생 살게 된다.
죄성을 가진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무슨 일을 하든지 죄와 다퉈야 한다. 이와 비슷한 다툼이 로마서에 내 속에 거하는 죄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구절로 인해 몸은 여전히 죄성에 사로잡힌 옛사람 그대로라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런 내용이 아니다.
로마서 8장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기록했다. 영적으로 우리 옛사람은 합법적으로 죽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다고 로마서는 확실하게 기록했다.
옛사람은 이미 죽었기에 고린도후서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잇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성도가 새로운 피조물임을 알렸다. 물론 이러한 성경 구절이 한 두군데 있지 않고 적지 않다.
’심령을 새롭게함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 하나님의 형상 회복‘
에베소서의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되어“라는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 새롭게 되는 사건은 사람의 능력으로 할수 없다. 헬라어 원어 의미는 ’다시 새롭게 하다‘는 뜻으로 타락한 자가 원래 상태로 회복됨을 말한다. 태초에 아담에 의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거룩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회복됐음을 말해 준다.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는 기록이 바로 그 내용이다.
갈라디아서에는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라“는 내용도 일맥상통한다.
‘성도에게 선한 일을 맡긴 이유, 이미 깨끗해졌기에 가능 하나님만이 선하다’
옛 본성의 자아 중심적인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온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 까지 새롭게함을 받은 성도의 영적상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는 여건이 갖춰 졌다.
디도서에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선한 일은 영육간에 깨끗하게 된 성도만이 할수 있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누가복음에 어떤 사람이 예수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라고 물을 때 예수는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이라고 알려주었다. 선한 이만이 선한 일을 할수 있다는 뜻이다. 선한 일을 묻는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도록 그내용을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선하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한 일은 깨끗하게 받은 성도만이 가능하다.
영적으로 이미 깨끗해졌다. 에베소서4장23과 24절에 성도가 깨끗해진 상태임을 밝혔다.
두 번째 그리스도와 연합은 부활이다. 성경은 침례(baptism)를 통한 부활을 설명했다. 로마서6장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 알지 못하느뇨”라며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기록했다.
‘성경에서 연합은 실제 사건, 매우 중요하기에 그대로 받아들여야’
“만일 그의 죽음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자가 되리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침례는 구원받은후 직접 행하는 물 침례가 있고 구원받을 당시 성령이 행하는 성령 침례로 구분해야 한다.
사도행전 11장에 고넬료가족이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내려오시니, 구체적으로 성령을 부어주시니라고 표현했다. 또 “요한은 물로 세례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말이 생각났다고 베드로사도가 고백한 내용을 참고해 보자.
또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후 요한이 증거하여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의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고 말했다. 성령 세례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사실을 아는 자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장사되고 그리스도가 부활했음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은 성도는 부활했다.
로마서에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며 그리스도의 부활시킨 하나님의 능력이 옛사람이 죽은 성도도 새생명으로 부활했음을 말한다.
‘오늘도 죄와 다툰다면 스스로를 기만, 성경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
로마서6장에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성을 지닌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영적 연합을 말한다. 영적 연합은 실제 사건이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는 영적 연합이 복음과 같이 이뤄진 실제 사건임을 밝혔다. 영적 연합이 실제 사건으로 기록됐음에도 불구하고 상징으로 받아들인다면 신앙생활에서 핵심 말씀을 놓친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죄에 죽음과 새 생명의 삶을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핼라어 ‘쉬네타페맨’은 함께한다는 의미의 ‘쉰’과 묻히다는 의미의 ‘답토’의 합성어의 부정 과거수동태로 죄의 통치를 받고 살던 사람이 완전히 죄가운데 묻혀 다시는 소생하지 못함을 나타낸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대속적 죽음에 연합하여 옛사람이 확실하게 죽었고 옛사람이 죽었기에 내 안에 사는 사람은 새사람이다.
‘거룩한 자만이 거룩하게 살수 있다, 죄성이 있는 육체는 불가’
고린도후서“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로 ‘새 것’이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새사람과 동일한 의미다. 골로새서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취어 있는 생명을 가르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새생명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성화를 이룰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이미 거룩할수 있는 여건을 준 하나님이 하나님처럼 거룩한 삶을 살라는 사랑의 메시지다.
역으로 생각해 보자. 죄성이 깃든 옛사람이 하나님이 요구한 거룩한 삶을 살수 있겠는가? 불가하다. 하나님은 이미 준비해 놓고 그대로 살라고 권유한다. 신앙의 길조차 홀로 두지 않고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가. 성도는 이땅 가운데 축복을 받은 무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