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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한글 창제’ 최고의 혁명적 개혁
언어학적이나 정치적, 행정적 감각 천재 ‘세종'
 
박성민   기사입력  2020/10/15 [14:44]

 

                          '조선 사대부, 파워를 분산시킨 한글개혁'

 

글은 사대부의 밥이요, 밥은 권력입니다. 권력을 백성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조선의 모든 사대부는 전하를 등지게 되고 사대부의 지지없이 꿈꾸는 조선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글자 창제를 거둬들여 주십시요

 

세종의 가마인 안여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있는 세종의 최측근 장영실의 방면을 놓고 당시 영의정이 세종과 정치적인 협상 안건으로 새로운 글자 창제를 멈추라고 요구한 영화 천문의 대사이다.

 

한글 창제 약4년전 왕의 가마인 안여전복 사건이후 세종은 사대주의를 부르짖는 영의정에게 자신의 심중을 토로하며 홀로선 조선을 꿈꾸는 것이요, 이 글자는 백성들을 위함이요,”라고 간곡하게 신하와 사대부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그러나 영의정의 지적처럼 당시 한자는 사대부의 밥이며 권력이었다. 그런 권력을 한 두사람도 아니고 모든 백성과 함께 나누자는 세종대왕의 요구는 당시 정치적인 상황에서나 지금 시대에서도 상상할수 없는 일이었다.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다.

 

최근에 벌어진 정부의 공공의대 건립 반대 시위를 벌인 의사들은 사적이익인 밥그릇을 위해 국민들의 바램인 공적이익마저 헌신짝 버리듯 팽겨쳐 버리는 모습을 우리는 얼마 전 목도했다.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며 국가 안보차원에서라도 전염병 전문치료 인력인 공공의대 건립은 반드시 추진해야 할 매우 긴급한 국가 주요정책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지지의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의대생들과 의사들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의료안전은 뒷전인 채 의사들이 남아 돈다는 논리를 펴며 집단으로 공공의대 반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더구나 자신들만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환자들을 불모로 거리로 나선 의사들을 바라본 국민들은 경악을 했다. 공익을 외면한 의사들의 댓가는 눈앞에 있는 밥그릇을 챙겼을지 모르나 아마 두고 두고 후회할 일이 나올 것이다.

 

          '글자는 사대부의 밥, 백성에게 나눠준 세종 한국 최고의 혁명가'

 

우리 시대에서조차 특정 집단의 권리와 권력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집단행동은 정권에 큰 위협 요소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의 주류인 사대부의 권력인 한자라는 밥그릇을 빼앗아 백성에게 나눠준 세종대왕의 정치적인 입지가 어떠했을지 아마 살 얼음판의 분위기였을 것이다.

 

한글 창제는 토론에 능하고 학문과 과학의 천재이며 정치적인 판단과 결단력이 뛰어난 세종이었기에 가능했다. 그 이후에도, 그 이전에도 이같이 개혁적인 정책은 한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오늘날의 한국 경제와 k-popk-방역 등 문화 국가로서 발전의 밑거름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세종대왕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가이며 언어학적 천재이며 진보중의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한국 역사중 가장 빼어난 인물이며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 역시 세종대왕이다. 권력의 재분배를 이룬 최초의 국왕이며 백성의 사랑을 실천으로 보여준 성군이었다.

 

한글은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없이 수년동안 세종대왕이 독자적인 노력에 의해 창제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당시 정치와 사회의 분위기로는 새로운 글자의 창제는 사대부인 양반들에게 대한 권력 분배이기에 왕권만으로 밀어붙이기에는 힘에 겨운 상황이었다. 또 세종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집현전 학자들은 매우 우수한 학자들이었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성리학 학자들이 주류를 이뤘기에 집현전의 도움을 받을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만약 세종대왕이 처음부터 글자 창제의 취지를 설명하고 집현전 학자들에게 새로운 글자 창제의 도움을 요청했다면 한글 창제라는 대 프로젝트는 숨도 쉬기 전에 고사(枯死) 당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오판을 했다면 오늘 우리는 한글대신 어쩌면 중국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문자 창제는 언어학에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천재 세종의 열정과 배포와 백성을 아끼는 마음의 결단에 의한 결과물이다.

 

세종대왕은 14431230일 한글을 전격적으로 반포했다. 반포시기도 매우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신하들이 즉각적으로 집단 행동을 막을수 있는 시기였다.

세종이 아껴왔던 집현전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은 새로운 글자 창제에 대해 반대 상소문을 올렸다.

 

                    '한글 창제, 세종 홀로 수년동안 노력 결과물'

 

 

집현전 최만리 등 주류학자들은 반대 상소문을 통해 대국인 중화가 조선의 모델이며, 한글창제는 중국을 버리는 일이라고 평가하며 세종을 압박했다. 당시 명나라의 비위를 거스리면 왕이라도 왕권의 안정을 보장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최만리 등은 상소문을 통해 한글을 야비하고 상스러운 무익한 글자라고 악평을 했다. 만약 세종이 여기에 굴복했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은 사라졌을 것이다. 정부가 공공의대 건립 정책을 의사들의 시위에 백기투항 하듯이 말이다.

 

최만리의 상소문에 반박해 세종은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칠음(四聲七音)에 자음이 몇 개인줄 아느냐고 책망을 했다.

 

조선사회의 문자인 한자는 최소2,000개이상을 배워야 사용할수 있기에 생산 노동에 종사하며 먹고 살기에도 바쁜 백성들이 시간을 내서 배우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한자는 시간이 남아도는 사대부의 전유물로 권력 독점의 결과물이 되었다. 그런 사대부의 국가 조선에서 백성들이 쉽게 글자를 익힐수 있는 한글창제는 신분 체계를 뒤흔드는 대사건이라 할수 있다.

 

세종은 토론을 중시했고 국정 주요과제는 어전회의나 경연의 토론을 통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종대왕의 집권기 전반은 육조 체제를 통해 직접 다스렸고, 통치 후반기는 의정부를 통해 결정을 내렸는데 이마저도 훗날 문종이 된 세자에게 서무결재권을 넘겼다. 아마 한글창제를 위해 시간 확보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세종 대왕의 한글창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절대군주의 자리를 위태롭게도 할수 있는 새로운 글자 창제를 신하들의 반대에도 강력하게 밀어붙인 이유는 훈민정음 언해본에 잘 나타나 있다.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히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라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목적을 우매한 백성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1444(甲子年) 216일에 세종은 집현전 소장학자들에게 고금운회거요에 대한 한글 번역을 지시하고, 우호적인 집현전학자 정인지,신숙주 등에게 한글창제의 원리와 사용 방법을 풀이한 훈민정음을 편찬케 하고 언어학 서적인 홍무정운 역훈과 동국정운을 편찬케 했다.

 

              '한글 실생활 활용 확대 ,세종 탁월한 행력능력에서 나온 것'

 

특히 세종은 세자인 문종과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 아들에게 한글로 용비어천가와 석보상절을 한글로 번역케 했는데 사대부들의 반발을 잠재울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또 정음청이라는 한글 사업 전담기구를 만들고, 한글로 된 과거시험과 관가에 한글로 서류를 제출토록하는 등 한글을 생활화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세종의 탁월한 정치적, 행정적 판단 능력은 가히 천재 세종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세종은 세종28년 부인인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한글로 월일천강지 곡을 직접 지었다.

 

한글 창제는 BC3000년경의 고조선시대부터 고구려,신라,백제 등 3국시대와 고려,조선,대한민국 등 한국 역사상 최고의 개혁적이고 혁명적이며, 진보적인 대 프로젝트임을 누구도 부인치 못할 것이다.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던 조선의 홀로서기에 나섰던 대왕 세종의 뜻은 외면한 채 명나라에 의지하여 국가 안보를 보장받고, 땅 덩어리가 큰 대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충성을 받쳤던 그들을 오늘날 우리는 사대주의라고 비난을 한다.

 

그렇지만 현재도 자국의 안보를 군사강국 미국에 의지하려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한국의 정치 지도자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조선시대나 우리시대나 사대사상이 여전함을 보여주고 있다.

 

세종이 조선의 안위는 조선만이 책임질수 있음을 깨닫고 조선의 홀로서기에 나선 뛰어난 외교 감각과 민족 자존감의 교훈은 한국의 안보는 한국만이 책임질 수 있음을 우리로 다시 한번 깨닫게 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전작권을 가져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며 시급한 일이기도 하다.

 

 

권력의 재분배와 신분 체계를 흔든 혁명적이고, 진보적이며, 개혁적인 한글창제를 특정집단이 아닌 백성을 아낀 군주의 손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은 한국 역사의 자랑이다.

 

 

또 한국인의 DNA의 우수성을 입증한 일이기도 하다. 한글 창제는 언어적으로나 자모음 활용도면에서도 세계적인 뛰어난 언어이다. 한글은 한국민의 자존심이며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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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15 [14:44]   ⓒ ibib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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