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초월적 이데아론, 항상 변하지 않은 존재'
과거부터 많은 사람들은 철학적인 고찰을 통하여 인간의 궁극적인 이상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성향과 형태를 띠고 있을지에 대하여 논의해왔다. 이것은 동서양 철학사를 관통하는 근원적인 주제일 것이다. 인간이 현재 자신의 모습이 가진 불완전성을 느낀다면 더 나은 존재로서의 나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으로 예를 들어보자. 플라톤 철학은 감각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은 존재의 참된 모습이 아니라고 했다. 참 존재는 변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동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나 동일성을 가진 참 존재는 ‘초월적인 이데아’로서 존재한다는 결론으로 인간의 이상향을 제시했다. 동양철학 사상가 공자는 어떠한가? 그는 “인”을 제시하며 도덕적, 인본주의적, 인문주의적인 의미의 '사람다움', 즉,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인간의 본질로 제시하였다.
이 외에도 인간은 역사를 통해 ‘인간의 궁극적인 완성형’에 대해 수많은 답변을 해왔다.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서신으로 불리는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했을까. 당연하다. 성경 또한 인간이 이상적인 존재로 존재케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성령의 열매 9가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육체의 일'과 대조를 이루는 말로서(갈5:19), 성령의 역사로 인해 성도가 그 삶을 통해 맺어가는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말한다(갈5:22-23).
이는 성령이 임한 성도가 말씀을 통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활 가운데 믿음으로 맺어가는 열매를 말한다. 성도가 당연히 맺어 가야하는 열매이지만 자칫 성령께서 스스로 맺는 열매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탐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라디아서5:19~21) )
'성령의 열매, 성령 아닌 성도가 맺는 열매'
하나님이 어떠한 연유로 이러한 9가지를 성령의 열매로 제시하였을까 생각해본다면 이것을 성취해 나갈때 빌립보서의 말씀처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즉 그리스도 예수님의 품성을 닮은 세상과 분리되어 거룩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일을 비교해 본다면 로마서의 속사람과 겉사람, 육체의 법과 마음의 법을 알수 있다. 성령의 열매는 이땅에서 성령이 임재하지 않은 비기독교인이나 여타 종교인들이 맺을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다. 물론 성령의 열매와 비슷하게 접근이 가능할수도 있으나 인간적인 고뇌와 육체적인 훈련을 통해서 맺을수 있는 열매가 아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여건하에서 그 열매 맺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치 탱자나무가 유자를 맺을수 없듯이 말이다.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일이 인간의 품성과 인간의 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살펴보자.
첫 번째로 앞서 언급했던 ‘절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성경 속에서 말하고 있는 절제란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이성으로 감정을 조절하고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고전 9:25; 벧후 1:6)으로 이는 정결하고 경건한 생활의 한 모습이자(행 24:25), 성령의 열매이기도 하다(갈 5:23). 성경에서는 특히 술(레 10:9; 민 6:3; 잠 23:31; 31:4; 렘 35:6; 단 1:8; 눅 1:15; 롬 14:21), 언행(딤전 3:11; 딛 2:2; 약 3:2), 육신의 정욕(롬 6:12; 고전 7:9), 부부 생활(고전 7:5), 지식(벧후 1:6) 등에 절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방종에 빠지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성실함을 갖추는 것으로 성경은 아주 많은 구절에서 성실함을 강조한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잠언 6:6), 또한 게으른 자를 미련한 자로 칭하며 꾸짖기도 한다.
성실하다는 것은 목표를 세우고 자기 자신을 다스리며 꾸준히 성취해나가는 과정이다. 뇌과학자들은 장기적인 목표, 단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꾸준함을 통해 그것을 성취함으로써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단기적인 쾌락을 쫓음으로 손상된 전두엽( 게으르고 무기력하며 감흥이 없는 경향이 있다. /단조롭고 일상적인 것을 좋아한다./한가지 일에 집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운동이나 다이어트를 시작하지만 결코 끝내지 못한다./일상적인 세계가 방해를 받으면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경향이 있다.)의 회복을 도와 올바른 도파민 보상체계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절제의 유익은?'
성경이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메시지가 되기 위해서는 ‘절제’가 인간에게 이로워야한다는 것을 능히 충족하고도 남는 이유이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란 말도 있듯 성실의 지속이 어려운 이유는 본능적으로 힘든 일을 피하고 편한 상태를 추구하는 인간의 효율적인 뇌의 구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유전학적 기질로 당연한 일이다.
참된 절제는 인간의 본성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한(갈 5:22-23) 성령의 열매인 까닭이다.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절제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성실함과 꾸준함이 오로지 성령의 열매 맺음으로 축복받은 그리스도인만이 가능하다. 당신이 올해 신년목표를 이루고싶다면 무엇보다 성경을 먼저 접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