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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 감시자 ‘양심’, 죄로 활성화된 신의 성품
마음에 새긴 율법 양심, 죄로 무뎌지고 무감감해 진다
 
박성민   기사입력  2024/10/19 [15:14]

 인간에게만 존재한 양심, 후천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양심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수 있도록 작용한다. 실체법은 위반시 처벌이라는 강제 규정이 있기에 지키려 한다. 그러나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윤리나 도덕은 처벌 규정이 없다. 단지 기준을 벗어나면 사회적 비난만을 받는다. 그런데도 공인(公人)이든 사인(私人)이든 사회적 비난을 두려워하며 심지어 사과까지 한다. 왜 그럴까? 양심 때문이다.

 

양심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해 선을 행동하도록 명령한다. 피조물중 오직 인간에게만 양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양심이 진화론의 산물인지 아니면 사회적 교육과 관습 등으로 생겨난 기능인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또 양심이 이성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지 여부도 논란이 인다.

 

과학계에서는 양심을 유전적 결정이라고 주장하고, 철학계는 양심을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고유 불변의 기능도 아니며, 진화의 결과도 아닌 사회적 지위나 교육 등으로 형성된 기능으로 판단한다. 과연 그럴까?

 

양심은 선악을 스스로 분별한다. 본래 기능이다. 어린아이에게도 양심이 존재하나 어린아이는 양심보다는 본능이 앞선다. 양심도 사람이 성장하면서 교육 등의 훈련을 통해서 민감해짐을 알게 된다. 마치 다이아몬드 원석도 가공해야만 보석으로 가치가 높듯이 말이다

  

  양심은 진화산물이 아니다, 고도의 선악 판단

 

도덕과 윤리, 각종 사회 규범 등에 적합하게 살면 양심은 더 민감해진다. 그 시대나, 사회 환경과 문화, 종교적인 관습 등에 따라 도덕과 윤리의 기준은 약간씩 달라진다. 그러나 양심의 절대적 기준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양심이 느끼는 정도는 개인에 따라, 지식의 정도에 따라, 사회 관습에 따라 차이가 발생할 뿐이다.

 

양심은 고차원의 선악을 분별하는 기능이다. 양심이 진화했다는 이론은 터무니없다. 만약 양심이 진화한다면 양심이 10%에서 100% 기능을 하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 각 사람마다 양심의 완성도가 다르니 사람마다 도덕 판단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양심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에게 동일한 상태로 주어진다.

 

양심은 고도의 선악을 분별하는 고차원의 기능을 갖고 있지만 개인이 살아온 경험과 지적 수준에 따라 양심의 민감도가 다르다. 양심이 죄로 부패해져 선악을 조절하는 기능이 손상되면 민감도가 떨어져 스스로에게 선악의 경고를 할수 없게 된다. 마비된 양심이다.

그래서 양심이 무딘 사람, 쇠처럼 단단한 사람, 무감감각한 사람 등이 생겨나게 된다. 이런 류의 사람이 잔인한 사건을 저지른다.

 

   ‘아담은 창조주 형상을 닮아, 신의 성품이 안에 존재 

 

양심은 진화의 산물도 아니며, 그렇다고 사회 관습과 교육 등 후천적으로 생겨난 기능도 더더욱 아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수준을 이미 뛰어 넘었지만 이들에게는 양심이 없기에 도덕적 판단을 하지 못한다. 사람의 목숨이 위험해도 AI는 기계작동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양심을 만들지 못한다. 불가능하다.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심을 가장 정확하게 기록한 책은 성경이외 없다. 나머지는 단지 이론에 불과하다.

고도의 선악 판단하는 양심이 인간에게 존재한 이유는 무엇일까? 놀라운 비밀이 숨겨졌다.

 

인류의 첫 사람 아담은 창조주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창조됐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 창조주께 불순종하면서 죄가 인류에 들어왔다. 아담에게 죄가 들어오면서 죄를 인지할수 있는 양심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양심은 사람의 행위를 선악간에 판단하고 죄라고 인지되면 양심의 법이 작동한다. 죄를 제어하는 자동 시스템이다. 도덕과 윤리적인 사람은 이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사람이다.

 

   수양과 고행 통해 신의 성품 도달 불가, 오직 예수가 걸어간 길 유일

 

죄를 인지할수 있는 양심은 성경 기록 목적인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며 절대적인 요건이다. 양심이 없으면 구원이 불가하다.

 

양심은 창조주가 아담 창조시에 인간에게 심어준 신의 성품이다. 내 안에 현존하는 신의 성품을 고행과 수행을 통해 깨달으려 곳이 종교이다. 그러나 신의 성품을 닮으려면 예수가 걸어간 길 그 길만이 가능하다. 인간의 고행과 노력으로는 사람 안에 존재한 신성을 깨우지 못한다. 다만 근접은 가능하다.

 

양심은 원래 뜻을 알면 살펴보면 그 기능을 파악이 가능하다. 양심의 헬라어는 쉬네이데시스은 함께라는 의미이며, 나머지는 알다라는 의미다. 양심인 영어 COMSCIENCE도 비슷하다. 사람의 깊은 곳 양심을 누가 공유하고 있는 걸까? 성경은 죽음이후 심판자 창조주라고 정확하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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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10/19 [15:14]   ⓒ ibib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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