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역사 발전 원동력, 자유향한 갈증’
인간의 마음에 간직한 최고의 갈증은 ‘자유를 향한 목마름’이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본능은 양보할 수 없는 욕구이기에 정치나 법률, 종교로도 누르기가 어렵다. 억압된 자유는 공기가 꽉 찬 풍선이 ‘펑’ 터지듯이 반드시 터트려진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왔다.
인간 역사의 발전은 억압을 벗어나기 위한 자유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남북전쟁도 흑인의 자유를 위한 전쟁이었고 고려와 조선의 민란도 가혹한 왕권과 탐관오리 수탈에 반발한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기를 맞은 핵심 이슈도 자유였고, 근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넘어 가면서도 핵심 이슈는 자유였다.
자유는 자유를 누릴때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그동안 누려오던 자유가 억압을 받을 때 비로소 가치를 알게 된다. 자유와 평등으로 상징된 민주주의는 19세기 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쟁취한 보편적 가치이다.
‘민주주의 고전 정의,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국민주권 지켜낸 한국’
정치학자는 민주주의 고전적 정의로 미국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1861-1865)당시 게티스버그의 연설을 주로 제시한다. 연설의 핵심 내용이 ‘국민의 정치’와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로 국민의 주권과 국민의 정치참여,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말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군부독재를 겪으며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1987년 6월 민중항쟁인 6.29 선언으로 대통령직선제로 전환되면서 13대 대통령 선거부터 직선제가 시행됐다. 5.18민주화운동과 대통령 직선제, 2016년 박근혜대통령 탄핵 촛불집회를 거쳤다. 한국의 현대 민주주의는 국민주권 즉 국민 지배의 원리 속에 성장했다.
이번 12월3일 비상계엄은 북한의 군사도발이나 국가 비상사태가 아닌 상황에서 선포된후 헌법기관인 국회의 합법적인 비상계엄 해제 의결의 무력화 시도를 국민의 저항으로 막아냈다는데 큰 의의를 둔다.
12월3일 비상 계엄직후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봉쇄한 경찰로부터 위기 상황을 직감한 국민이 자발적으로 국회로 달려가 국회 무력화 세력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맞섰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의결이 실패후 밀려올 폭풍우를 국민은 과거 군사정권에서 겪어 봤기에 경찰과 특전사를 결사적으로 막아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일부 국민의힘 의원이 합심해 의결정족수를 채워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다행스럽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역할이 무엇인지 역사와 경험을 통해 배웠고 12.3 비상 계엄시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다시 한번 실천했다. 12월3일 비상계엄을 통해 배울 점은 국민은 깨어있어야 국민주권을 지켜내며 국민주권은 투쟁을 통해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 내적-외적 자유, 육체와 영적 자유’
루소는 “인간은 자유를 지니고 태어 났지만 도처에서 인간은 사슬에 매여있다.”고 부르짖었다. 사슬은 법과 정부이다. 최소의 통제로 최대의 법률적 효과를 낼수 있는 법이 최고의 법이라는 사실이다.
자유 눈에 보이는 육체적, 외부적 자유와. 또 하나의 자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적, 영적 자유이다.
인간의 마음에 내재한 자유를 향한 갈증은 외적 자유인가 아니면 내적자유일까? 인간 속에 내재된 자유는 자유로운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에 분출되는 절대 본능이다. 자유란 스스로 결정할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광범위하면서도 거의 무제한에 가깝지만 무제한의 자유는 아니다. 창조주가 인간에게 준 자유는 최초에 창조주의 마음에 존재한 자유이다.
그러기에 자유는 철학의 오랜 논제이다. 헤겔, 스피노자, 루소, 토마스 아퀴나스, 마르크스, 로크 등 많은 철학자가 자유를 논했다. 성경의 영향을 받은 서양철학에서 자유라는 논제의 근저에는 기독교의 핵심인 성경이 깔렸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죄를 범하는자 죄의 종’
성경은 자유를 진리와 앎을 함께한 자유로 규정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기록에 성경의 핵심 진리가 들었다. 여기에서 진리를 안다는 의미는 객관적 사실을 머리로만 이해하지 않고 진리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와 직접적이며 인격적인 교류를 통해 자신의 삶에 수용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성경이 기록된 목적이기도하다.
왜 그리스도를 삶에 수용해야만 하는가? 유대인도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왜 자유해야 하는가라고 예수께 항의했다. 예수의 답변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죄가 인간을 근본적으로 억압하고 있음을 알려줬다.
성경적으로든, 법률적으로든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은 없다. 죄가 인간을 진리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잃게 만들었지만 죄에게 속했기에 이를 알지 못할 뿐이다. 이것이 영적 자유의 시각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본능적인 자유를 향한 갈증은 바로 진리를 통한 자유의 갈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