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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행동, 뇌 옛 회로 약화-대체
크리스찬, 긍정습관 뇌 회로 개척 어렵지 않다
 
박성민 ㅣ   기사입력  2026/09/01 [16:46]

       ‘말은 물가로 데려갈수 있으나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핵심은 의지’

 

‘말을 물가로 데려 갈수는 있으나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영어권 속담이다. 1175년경의 오래된 영어버전으로 ‘Hwa is thet mei thet hors wettrien the him self nule drinken 스스로 마시지 않으려는 말에게 누가 물을 마시게 하겠는가?’라는 뜻이다. 이 속담의 핵심은 말이나 물이 아닌 자발성(WILL,의지)이다. 속담에는 현대 뇌 과학이 담겨져 행동 변화를 분석하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성경의 뇌 과학 현상과 비교하면 숨겨져 있던 정보 습득이 가능하다.

 

‘물가로 데려간다.’의미는 특정인에게 변화할수 있는 환경 제공, 기회 제공, 권면, 교육, 설득 등 외부적인 도움을 말한다. ‘물을 마시는 행위’는 당사자의 오직 내면의 선택, 의지, 자발적 행동에서 비롯된다.

 

이 속담은 자기 일은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냉소적인 의미가 아니다. ‘You can lead a horse to water’는 말을 물가로 인도하는데 적극적으로 행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었다. 도덕적이든, 종교적이든. 신앙적이든, 철학적으로든 인간의 변화를 원한다면 인간의 자유의지 존재를 계산에 넣어야 한다. 만약 내가 ‘너를 변화시키겠다.’고 강제하면 자율적인 결과를 기대키 어렵다. 국방의 의무로 군대 전역후에도 사회에서 긍정적인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지 못한 이유는 변화된 습관이 자율성에 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이 물을 먹지 않은 이유, 상대입장에서 판단 필요’

 

말이 물을 먹지 않는 이유를 말의 고집 때문이라고 단순화시키면 편협된 시각이다. 말이 환경이 익숙치 않아서, 무지와 두려움, 상처와 경험, 습관, 가치관 차이, 정보의 오류 등으로 인해 물을 먹지 않을수도 있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그 정보를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 간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그간극을 어떻게 좁힐지는 여러 성향에 따라 차이가 난다.

 

변화가 좋은 줄은 알지만 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을 발견하는 것과 물을 먹는 것, 옳은 것을 인정하는 것과 옳은 것을 실행하는 것. 명령을 받은 것과 명령을 지키는 것, 죄를 아는 것과 죄를 끊어 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변화는 원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무엇이 옳은지 정보가 부족해 실행치 못했다면 율법을 제대로 가르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옳은 길을 안내하는 율법을 더 많이 가르칠지라도 잘 지키지 못한다. 이를 간과한 채 율법적인 성향만을 가르치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피곤해 진다.

 

            ‘물-하나님의 뜻 말씀, 물가로 인도 율법-말은 죄성의 인간 비유’

 

이 속담을 성경에 대조하면 물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기에 하나님의 뜻이라 할수 있다. 율법은 물가로 데려가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교사 역할을 한다. 죄성을 가진 인간을 말이라 한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만 행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아쉽지만 사실이다.

 

옳은 길인줄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 안에 내재된 죄를 범할수 있는 성향, 죄성 때문이다. 율법이 인도하는 힘이 약해서가 아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기록은 율법의 강력함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죄성있는 인간에게는 거룩한 율법을 실행할 내재된 힘이 없다. 양심은 선악을 판별할 능력은 있지만 실행할 힘은 갖지 못했다.

 

     ‘변화된 마음 -새로운 행동 가능, 종교-오물통에서 깨끗한 물 나오도록 고행’

 

변화된 마음에서만 변화된 행동이 나온다. 오물통에서는 오물 밖에 나오지 않는 이치와 같다. 인간이 진정한 선을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선이 나올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종교는 오물통에서 깨끗한 물을 나오도록 고행하지만 고행을 통해 얻는 것은 깨끗한 물이 아닌 육신의 죄성뿐이다. 교육을 말하자는게 아니다. 인간의 근본인 본성 변화가 가능한지 여부를 따져 묻는 것이다.

 

성경은 종교가 아닌 이유가 바로 내부 변화를 통해 외부 행동 변화를 이끌기 때문이다.

“새 영과 새 마음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는 성경 기록은 인간의 근본 변화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인지 일러준다. 말이 물의 필요성을 깨닫고 스스로 마시기를 원하는 상태다. 인간은 마음의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고서는 근본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기 어렵다는 말이다.

 

성경은 크리스찬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부른다. 갈라디아서에“내가(옛사람,옛자아 old self)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고백했다. 죄를 지으려는 성향인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뜻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처럼 고백해야 한다. 이 고백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뒤죽박죽일때가 많다. 율법 생활을 하는 기독교인과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된다. 십자가의 속죄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옛 자아가 십자가에 죽었음을 알게된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입은 새사람이기에 성화의 삶이 가능’

 

에베소서의 “심령을 새롭게하여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는 기록은 새사람을 무엇을 입고 있는지 조건을 밝혔다. 하나님의 뜻을 실행할수 있는 내재된 힘이 갖춰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사실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 성화의 삶이 이 어렵다. 성화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이다. 구원받을 당시 성도에게 새 마음이 주어졌고 그 마음에 법을 새겨 하나님이 이끄시는 사람이 됐다. 성령의 인치심과 함께 성령의도움으로 근본 변화가 가능한 존재가 됐다.

 

뇌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자. 우리 뇌에는 경험과 반복에 따라 뇌 신경회로의 기능과 연결이 변화하는 ‘신경가소성’이 존재한다. 만약 옛사람의 옛 행동의 뇌 회로가 고정되어 변화 불가능 상태라면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피조물로 새로운 삶은 불가하다. 우리 뇌는 근본적인 변화를 받아 새마음에서 새로운 행동이 가능토록 설계됐다.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피조물인 성도를 위한 고차원의 프로그램이다.

 

뇌 과학은 새로운 행동을 반복적으로 학습하면 전전두피질과 선조체사이의 통제가 변화하고 반복된 행동이 점차 자동화된다고 밝혔다. 옛 행동의 뇌회로를 약화시키면서 새로운 행동회로를 반복 강화해 나가는 것이 행동 변화의 중요 원리이다. 새로운 습관은 옛 회로를 지워버리기보다는 새로운 행동이 경쟁력을 얻어 기존 습관의 발현을 억제, 대체하는 과정이라고 신경과학은 설명한다. 새로운 습관 형성은 뇌의 여러회로가 관여하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나‘를 인식해야 기존 삶에서 쉽게 벗어난다’

 

크리스찬의 새로운 피조물로서 삶은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죽었다는 사실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새사람을 입었다는 사실 확인으로 이어져야 한다. 새사람은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동기, 새로운 선택을 통해 새로운 행동을 하게되고 반복하게 되면 새로운 습관과 행동 성향으로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사실 인식이 없다면 여전히 율법에 얶매여 죄와 다투는 옛사람의 습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금도 구원받았다는 크리스찬의 삶이 죄와 다투는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오르막과 내리막을 교대로 살아간다. 창조주의 능력을 무시한 결과이다.

 

새사람으로 인식과 변화를 받아들이면 성경에 숨겨진 새사람으로서의 삶의 여정이 일상적,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성경의 놀라운 비밀이다. 크리스찬이 그리 힘들지 않게 변화의 삶이 가능한 이유는 자신의 의지보다 더 강력한 성령이 내부에 존재해 우선적으로 뇌에 영행을 미치기때문이다. 새사람의 여정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길이다.

 

성경은 크리스찬에게도 믿으라, 회개하라, 순종하라, 죄를 버리라고 명령한다. 그 이전에 성령이 들어와 변화된 내면을 근거로 한다. 기존 율법적인 생활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말을 물가로 인도하는 가장 좋은 여건은 말이 스스로 물의 중요성을 깨닫고 마시도록 하는 일이다. 그일은 내면의 변화 후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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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9/01 [16:46]   ⓒ ibib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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