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과 유럽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계를 비롯하여 종교적인 영역까지 대단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킨 찰스 다윈의 ‘자연 선택설’ 종의 기원은 신의 창조를 부인하고 적자생존의 원리하에 제국주의와 인종 차별 등을 정당화한 이론을 제공했다. 진화론은 사람들의 사고의 중심을 성경의 창조주에서 인간으로, 사후세계와 심판에서 현실주의 및 세속주의로 옮겨 놓았다.
다윈은 1859년 영국 린네 학회에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대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은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의 ‘변종으로부터 무한히 멀어져 가는 경향에 관하여’라는 진화론적인 논문과 함께 발표됐다.
'다윈 자연선택설, 웰리스와 함께 린네학회에서 발표'
다윈은 논문 발표전 20년동안 자연선택설을 연구해 왔는데 서둘러 발표를 앞당겼던 것은 박물학자인 월리스의 연구와 비슷해 자칫 다윈의 논문이 웰리스의 논문에 빛을 잃을 것을 염려해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함께 발표하게 됐다. 종의 기원의 서문에서도 다윈은 진화론을 미정립된 이론임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과잉 생산된 개체들간의 생존경쟁을 통해 환경에 적응한 개체는 생존하고 그렇치 못한 개체는 자연도태 된다는 이론이다. 살아 남은 자연 선택된 형질이 후손에게 물려 지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기존의 종과는 다른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우주 만물의 신의 창조를 전면 부인하는 이론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당시 유럽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대단했다.
영국의 산업자본주의에서 정부 간섭을 배제한 개인대 개인, 기업간의 자유경쟁을 통한 시장경제의 기초를 제공했고 자본주의의 잉태를 촉진시켰고, 농업 분야에서는 품종개량을 통한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 왔다.
매우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주의가 진화론의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사회적으로 용인되었고, 민족주의와 군국주의를 통한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의 착취를 정당화하였다.
사회적 다윈주의자인 철학자 스펜서(1800-1903)는 ‘ 인간 불평등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 자연적 속성으로 인종차별이나 식민지 지배, 약육강식을 합리적’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불평등은 자연의 속성으로 판단을 했다. 모두 진화론을 근거로 나온 사상이다.
'맬더스 인구론 영향, 적자생존 원리 영향'
진화론은 인간의 창조(아담과 이브)를 부인하고 오랜 시간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명체가 탄생했다는 주장으로 많은 유인원중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은 한 인종만이 지구상에 살아 남아 현재의 인류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무생물이 유인원으로, 유인원이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종과 종간의 화석이 지구상에 단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진화론에 따르면 상상할수 없을 정도의 많은 화석이 나와야 하는데도 단 한 종류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대진화가 입증되지 않은 서투른 이론에 불과함을 말해 주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의 근간인 적자생존의 원리는 ‘인구는 기아 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 급수적으로 증가’해 인구억제의 필요성을 주장한 맬더스의 인구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만약 오늘 이 시점에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다면 19세기 영국과 유럽 학계와 사회처럼 호응을 얻을수 있을까? 불가하다. 다윈이 주장한 자연발생설은 이미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이론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루이 파스퇴르가 1861년 발표한 ‘자연발생설 비판’에서 ‘ 생명은 생명에서 나온다’는 법칙을 발표했다. 다윈의 자연발생설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 냈다.
진화론은 기본적으로 ‘우연과 생명의 자연 발생’을 가정하에서 성립되는 이론이다. 그러나 과학은 우연에 의해서 논리 전개를 하지 않는다. 진화론은 과학이 아닌 정립되지 못한 이론에 불과하다.
특히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자연이라는 존재에 오랜 시간이 흘러가면 자연은 스스로 무생물에서 인류의 탄생까지 만들어 낸다는 것인데 자연은 그럴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현재 자연에게 부여된 힘은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른 것으로 모든 자연물이 진화가 아닌 퇴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힘에 의한 진화는 불가하다.
진화론은 싱싱한 사과 한 개를 두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 더욱 싱싱하면서 다양한 맛을 낼수 있는 사과로 진화하고 더욱 오랜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종이 나온다는 것이다. 믿을수 있겠는가? 이성적으로나,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불가한 이론임을 알수 있다.
진화론이 미정립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윈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다윈이 직접 말년에 임종을 앞두고 ‘종의 기원’은 미완성 논문임을 밝힌바 있다.
다윈은 말년에 병상에서 진화론과는 전혀 방향이 다른 성경의 예수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인정하고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예수를 주님으로, 창조주로 받아들였고, 진화론이 잘못 인용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불쾌해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윈 병상에서 성경 읽어달라 요청'
다윈의 말년은 병상에서 지내면서 호프부인의 간호를 받았다.
크리스찬이던 호프부인은 다윈에게 창조 기사의 장엄함과 창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윈에게 넌지시 언급하자 다윈은 고통스러운 듯이“ 나는 정립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였소. 모든 것에 대해 탐구하고, 이론을 제안하고 궁금해 하곤 했소.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정립되지 않은 생각들이 들불처럼 번져져 사람들의 종교가 되어 버렸소”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윈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소유 여름별장을 가르치면서 집 하인들과 소작인들과 이웃을 모아 놓으리이다. 그곳에서 (성경)강연을 할수 있겠소”라고 호프부인에게 요청을 했고, 호프부인은 ” 무엇에 관해 말을 할까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다윈은 그리스도 예수라고 분명한 어조로 대답하며 “그의 구원에 관해서, 그것이 최선의 주제가 아니겠소”라고 답했다고 한다.
살포드 대학의 크로프트박사는 다윈의 여름별장에 가졌던 복음적인 집회에 관해 여러 가지 증거자료들을 제시한바 있다.
호프부인의 친구이며 당시에 복음주의자로 잘 알려진 제임스 패건이 다윈의 정원 집회를 조직하고 준비했던 사람인데 다윈의 아내 편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다윈 요청으로 여름별장에서 성경 복음 집회 자주 열려'
다윈의 아내인 엠마가 쓴 ’한 세기의 가족 편지들‘에 패건의 기록에 다윈 가족과 그 집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했고 그중 가족집사인 파슬로우는 회심했고, 세일즈 부인과 몇몇은 빛으로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영국 개신교 신문인 잉글리쉬 처치맨에도 다윈의 회심에 대해 증언이 실렸다고 한다.
다윈은 임종 직전 자기를 돌보았던 에반스부인에게 신약성경을 읽어달라고 하고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 저멀리 푸른 언덕에라는’ 찬송을 불러 달라 부탁을 했다. 이 찬송이 끝나자 감동을 받은 다윈은 “내가 진화론을 그런 방식으로 주장했던 것을 후회한다”라고 말했다.
진화론 이론의 제공자 다윈은 말년에 성경의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 들여 회심을 했고, 이같은 사실은 그의 가족들과 마지막 임상을 지킨 주변 사람들에 의해 증언들이 나온바 있다. 그렇지만 많은 다윈주의자들은 다윈의 회심을 적극적으로 강력하면서 두려워할 정도로 부인했다.
다윈의 회심은 대진화가 이론에 불과한 가장 확실한 증거이며, 그들이 주장하는 다윈주의 모두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단순한 이론에 불과함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 비교 없이 진화론 정설로 받아들여, 사회 문제 뿌리'
그런 진화론을 한국의 교육계가 정규 교과로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한국 교육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짧은 시간에 나타난 자살과 인명 경시, 현실주의, 극심한 사회 경쟁주의,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 물질주의, 계급투쟁주의적 사고 등 셀수 없는 많은 사회 문제들이 단순한 산업화 과정으로 문제로만 봐서는 안된다. 진화론에 찌들어 모든 사고의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진화론적인 사고가 문제의 본질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시급히 청소년들이 창조와 진화를 비교학적으로 판단할수 있도록 그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그것이 한국 교육의 백년대지계의 밑바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