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극복해 나가는 큰 두 줄기는 정부의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확산 방지 노력과 국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분류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감염 확산 방지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도 한계가 있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만으로도 한계가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차단은 오직 정부와 국민간의 신뢰감 속에서 이뤄져야만 효과를 볼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2월말부터 시작된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시책으로 코로나19 감염 확산 차단에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정부와 국민의 신뢰감에 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피로감을 느낀 국민들의 마음이 느슨해지는 사례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을 더욱 피곤케 한 것은 집단 감염의 원인인 교회들이 주일 집회를 자제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중요성은 서울시립대 박인규교수의 ‘n-body 입자충돌 장난감’시뮬레이션에서 잘 나타난다. 200명이 가로와 세로 100m 광장에서 초당 1m씩 이동하며 1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상황을 설정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를 10%가 무시헀을 때는 감염 속도가 완만해 완전 감염까지 60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무시 세력이 50%일 경우 25시간부터 감염이 폭증해 47시간만에 모두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수 있는 시뮬레이션 실험이다.
'사회적거리 두기 실패시, 이탈리아와 스페인 전철'
영국 런던 임페리얼대학도 사회적으로 접촉을 제한하지 않으면 올해 코로나19로 약4,000만명이 사망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 과학기술연구원도 한국 사회가 2월말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이탈리아나 스페인처럼 확진자가 폭등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국민들 대다수가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반면 상당수 교회들이 정부의 권고와 자치단체의 강제행정 명령을 무시한 채 주일 모임을 강행하고 있다.
교회들이 집회를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수록 더욱 힘써 모임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께 믿음있는 행위라고 그 이유를 들수도 있다. 또 6.25전쟁 동안에도 주일 예배를 중단하지 않았는데 주일 예배를 멈추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유를 들수도 있다. 각 교회의 집회 강행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이미 한국 사회는 대구지역에서 신천지의 독특한 집회방식으로 인해 코로나19 감염이 폭발적으로 확산될 때 경험해 보지 못한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목도했다.
신천지의 폐해를 목도한 국민들은 상당수 교회들이 국가나 지방단체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무시한 채 집회를 강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기독교 혐오증마저 나올수 있을 정도이다.
'교회의 성경적인 의미, 거듭난 성도들의 무리'
먼저 교회의 성경적인 의미를 따져 보자. 교회는 건물인 교회당(敎會堂)이 교회가 아니다. 성경에서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교회는 예수 십자가의 피로 거룩함을 입은 자들의 모임이 교회이다. 아킵보와 그 집에 있는 교회와 눔바와 그 여자 집에 있는 교회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건물이 교회가 아니다.
예배의 성경적 의미를 살펴보자. 로마서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기록하며 ‘ 너희 몸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하고 있다. 예배는 특정 장소에서 특정 시간에만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영은 살과 뼈가 없다)시며 천지에 충만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믿는 자의 인생 전체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예배이다.
'천지 충만 하나님, 예배는 인생 전체를 의미'
그러므로 예배의 기본단위는 개인이며, 교회로는 가정교회이다. 성도 전체가 모여 성경을 배우고 기도하는 것은 마땅하나 여건이 되지 않을 때는 당연히 가정교회 중심으로 집회를 가지면 된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행정명령을 발동해 사회적 거리두기와 교회의 주일 모임을 자제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선지가 오래되었다. 얼마나 교회들이 정부의 말을 듣지 않았으면 지난 4일에는 문재인대통령이 나서서 집단 감염원인이 되고 있는 종교집회를 자제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을까.
그런데도 헌법상의 종교 집회의 자유와 믿음의 이유등을 들면서 정부나 자치단체의 행정명령을 무시한 채 주일 집회를 강행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일까? 분명코 아니다.
성경은 디도서를 통해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왜 성경은 국가의 권력에 복종이나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을까? 이유가 있다.
사도바울의 서신서 디모데전서를 통해 성경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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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성경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라고 기록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위배되지 않는 한 권세에 굴복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교회 주일 모임 강행, 성경의 권세 굴복하라는 가르침 불순종'
그런데도 불구하고 상당수 교회들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명령을 무시한 채 주일 모임을 강행하고 있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불순종이다.
종교집회 자제를 요구하고 있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 코로나19의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해서 자제하자는 것이다. 마땅히 교회는 이에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성도들의 안전과 국민들의 안전이 보장된다.
코로나19의 감염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교회는 성경의 말씀의 권위를 거스려서는 안된다. 교회의 모든 권위와 율법은 성경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거스리는 행위는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며, 불신자이다.
예수는 요한복음을 통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교회에게 주었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에는 첫째는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과 두 번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포함되어 있다.
네 이웃이 누구인가? 가깝게는 교회당 주변 시민과 전체 국민들을 생각할수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성경을 실천하는 성도의 삶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권력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있는 자들의 실천적 덕목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서울지역에서 서울시의 집회 금지 행정명령을 받고도 5일 주일 집회를 강행하며 경찰과 행정공무원들과 대립하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정부와 지자체에 반기를 들며 모임을 강행한 이유는 교회를 위한 것인가, 교회가 정치적으로 우뚝서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교회 목사나 교회 지도자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수 없다.
권력에 순복하라는 성경의 명령을 무시하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인지 해당 교회 목사와 장로 그리고 교인들에게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말이다.
'생사 갈림길 코로나19,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한다면'
생사의 갈림길이 될 수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는 일부 교회들의 행동을 지켜 보면서 예수를 믿지 않는 국민들은 우리 시대 교회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성경의 하나님이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고 지자체의 행정명령을 거부해도 된다고 하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책망했다. 우리 시대 정부의 권면을 외면하는 교회들에게 하나님은 동일한 책망을 하지 않을지 생각해 보자.
교회 존립 목적인 복음 전함은 뒤로 한 채 정부나 지자체와 아주 열정적으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자. 사도행전에 이 시대 교회가 계속 기록된다면 어떻게 기록될까?
정치적이며, 반항적이며, 복음에는 냉소적이며, 성경의 기록을 무시한 교회들이라고 기록하지는 않을지 의문이다. 교회들은 성경의 말씀에 따라야 한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진정으로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