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위기때 마다 한국 덕분에 기사회생’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원자폭탄의 심각한 타격을 받으며 패전국으로 전락한다. 미국의 견제 속에서 피해 복구와 경제성장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일본은 패전 5년만인 1950년에 한국에서 터진 6.25 전쟁이 그들에게 경제성장 기회였다. 미군과 UN군의 병참기지로서 전쟁 특수를 톡톡히 누리며 경제성장 기틀을 다졌고, 오늘날의 경제 대국 일본으로 성장했다. 역사에서 가정을 논한다는 것은 어리석지만 한반도의 전쟁이 없었다면 오늘의 일본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일본의 문화 경제적 발전은 한국이라는 국가를 생각지 않고는 논할 수 없는 사안이다.
1902년 영일동맹을 맺은 일본이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포츠머스조약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한반도의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이때 일본은 러일전쟁으로 국가재정이 바닥난 상황이었고 국가적으로 경제적인 위기 상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후 대한제국에서 곡물과 각종 자원을 일본으로 실어 내면서 기사회생하게 된다. 그에 더해 대한제국의 인력을 강제 징용하여 경제적 부흥기를 일궈낸다.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당시 한반도는 일본의 극심한 수탈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냈으며일본은 한반도를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이뤄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고대사는 어떨까. 한일 고대사를 살펴보면 BC4세기 한반도에서 청동기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청동기문화를 전해주고 철기문화도 전해주었다. 고구려를 통해 기마 문화가 일본에 전해졌고 백제를 통해 논어와 천자문을 배웠으며 4세기 중엽 아직기는 일본 태자에게 한자를 가르치기도 했다. 백제는 일본에 도기와 직조기술을 전수해 줬고 백제 성왕 때는 불경과 불상 문화를 전해주어 일본의 아스카문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가타카나도 한반도 통해 전한 문자 변형’
일본 제2 도시인 오사카에 있는 세계 최대무덤으로 자랑하고 있는 난토꾸 천황 무덤이 있는 지역의 옛 이름이 백제군 남백제 촌이다. 지금도 백제 대교와 백제촌, 백제라는 성을 가진 일본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한반도를 통해 일본의 사회, 문화와 경제발전이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는 시시하다는 뜻의 일상용어로 쓰이는 일본어 ‘쿠다라나이’에서도 백제의 영향을 알 수 있는데, ‘백제의 것이 아니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이 말은 백제의 것이 아니므로 시시하다는 의미로 그 시절 일본인들이 백제의 문화를 어떻게 대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에서 건너간 문화가 아니었다면 일본의 문화 발전은 지금과는 다른 양상을 띠었을 것이며 한반도를 통해 넘어가 문자로 변형 사용된 일본어 가타카나 또한 없었을 것이다.
1592부터 1597년까지 한반도에서 벌어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일본이 유럽 포르투갈로부터 조총 제조법을 배워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의 침략전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왜란으로 조선과 일본이 외교관계가 끊어지자 1603년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에 새로운 쇼군의 축하사절단인 통신사를 요청한 것이다. 조선의 통신사는 300~500명 규모로 일본 대마도를 시작으로 시모노세끼-오사카-교토에 이르는 동안 6개월에서 1년 동안 문화교류를 벌였는데 통신사들이 머무는 곳마다 유학과 한문학의 토론이 활발히 일어났다고 한다. 조선은 순조 11년까지 12차례에 걸쳐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였으며 일본은 막부 쇼군이 취임하면 새로운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조선에 통신사를 요청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처럼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겪으며 신식무기로 무장할 때까지 조선의 문화를 배웠으며 일본의 문화 원류는 한반도임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조선 통신사 6개월에서 1년 동안 일본에 문물 전달’
현재 일본의 문화는 퇴보해 가고 있다. 일본은 2020년에도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고 있고 상하관계의 상징인 도장문화가 엄격해 컴퓨터 결재의 편의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또한 K-POP의 시초라고 주장하는 J-POP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세계에서 그들의 예상만큼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보더라도 일본의 문화는 성장이 정체된 상태로 진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일본의 쇠락은 한국의 문화를 받아 성장했던 과거를 무시한 채 한국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오만이 일으킨 결과이다. 일본은 해결책을 다시금 한반도의 전쟁에서 찾으려 하는 듯 수년 전부터 한반도의 전쟁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다. 6·25전쟁 당시 일본의 참전 대가로 한반도를 식민지로 줄 것을 요구했던 것처럼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해상자위대가 한반도 상륙을 국제사회에 승인받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현재 일본의 문화, 경제침체에서 벗어날 유일한 활로가 한국에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가 일본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국을 접하고 그에 더해 아시아의 역사와 상황을 파악하면서 식민지배 이후 ‘몹시 가난하고 낙후된 국가였던’ 한국이 현재의 수준까지 경제발전을 이룬 것에 대해 신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식민지배 이전의 조선은 결코 가난하고 낙후된 국가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일본이 통신사를 통해 문물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사신을 파견할 정도의 수준 높은 문화를 누리며 살아온 국가임을 일본의 의도적 왜곡으로 인해 접하지 못한 것이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을 저개발국가로 오해하는 국가와 국민이 상당수에 이르렀으나 K-POP 과 한류 문화가 유럽지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 전파되고 코로나19의 우수방역을 통해 K-방역이 알려지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고 있는 현상은 한국의 문화적 저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문화의 뿌리인 한국을 무시한 일본이 갈 길을 잃은 채 실패의 늪으로 빠지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우월한 문화라는 것은 없다. 각 나라의 개성과 특성은 고유의 모양으로 아름답고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먼저 된 문화가 영향을 끼치고 영향을 받은 관계는 변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자국 문화의 우월함과 우수성에만 집중하다 보면 이러한 사실을 놓치기 쉽다. 일본의 패착 또한 여기에서 시작됐다. 일제 식민치하로 인해 오늘날의 한국의 산업기반이 갖춰졌다는 착오적인 주장이나 임나일본부설 같은 역사 왜곡, 문화의 우수성 홍보를 위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대책 없는 혐한 주의는 일본 그들에게 근본적인 문화 발전을 가져다주진 못함을 깨달아야 한다. 일본은 지금이라도 눈을 돌려 한국을 바라보고 세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그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