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쇼펜하우어는 왜 신은 항상분노한다고 생각했을까?
죽음과 지옥의 두려움에 떤 염세주의 철학자
 
박성민   기사입력  2026/01/10 [10:57]

          쇼펜하우어 성경적 사고관, 지옥과 구원 상고

 

죽음과 죽음이후 지옥을 두려워했던 쇼펜하우어는 왜 인생과 세상을 비관론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염세주의 철학자가 됐을까? 철학사는 쇼펜하우어는 전통 기독교적 사고관을 가지지 않았고 불교와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마음의 생각을 기록한 일기에서 쇼펜하우어는 왜 주님이라는 자는 항상 분노하고 계시는가?‘라고 자문한 글이 나온다. 구원과 지옥에 대해서도 상고(詳考)했다.

 

쇼펜하우어는 욕망과 의지를 인생의 실체로 알고 자취도 남기지 않고 불합리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했던 철학자였다. 입만 열면 태어나지 않는게 최선이고, 태어났다면 목숨을 끊는게 차선이라고 말했던 그가 1831년 콜레라가 창궐하자 거주지인 베를린을 탈출했다. 그의 염세주의 사상이 사실상 역설적임을 알 수 있는 사건이다. 죽음을 두려워했기에 삶을 더 비판적이며 비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구원받지 못하자 새로운 구원관 정립했지만 거기에는 구원이 없다

 

지옥이 마음에 각인된 상태에서 성경적인 구원을 받지 못하자 쇼펜하우어는 불교와 힌두교로 눈을 돌려 구원관을 새로 정립하려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길에는 구원이 없다는 점을 몰랐을 것이다.

 

불교와는 달리 기독교의 지옥은 영원히 빠져나올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쇼펜하우어는 왜 주님이라는 자는 항상 분노하고 계시는가? 왜 그는 나를 멸망시키려 하는가. 왜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야 하는가라고 분노했다.

 

불교는 업()만큼 사실상 지은 죄만큼 지옥의 고통을 당한 뒤 윤회한다는 사상이다. 윤회를 멈추는게 해탈로 보기에 불교인은 지옥과 죽음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지옥이 영원한 곳이기에 두려워한다. 쇼펜하우어의 두려움은 불교사상이 아닌 기독교적 사고관임을 알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분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해 지옥간다는 피할수 없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주님은 분노한다고 생각했다. 쇼펜하우어가 주님이라고 부른 예수그리스도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며 구원은 그리스도가 이룬 사역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자세히 알려줬다. 영원한 생명을 약속했다.

 

         ’지옥은 영원히 실존, 구원은 이 땅 가운데서만 가능

 

2000년전 유대땅에 온 예수그리스도는 지옥의 실존을 가장 자세히 알려줬다. “거기(지옥)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한다,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치듯함을 받는다.슬피 울며 이를 가는 영원히 고통받는 곳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쇼펜하우어의 일기 형식의 글은 놀라울만한 깊이가 있지만 아쉽게도 인생의 근본 문제인 죽음의 두려움에서는 탈피하지 못했다.

 

쇼펜하우어는 성경의 창조주를 주님이라는 자라고 불렀다. ’주님이라는 명칭은 기독교인이 예수그리스도를 주(주인주)로 받아들인 후 맺어지는 관계이다.

 

쇼펜하우어는 성경이 사실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구원받지 못했을까?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구원의 도를 전했던 기록에 비밀이 숨겨졌다.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는 기록을 살펴보자.

 

         회개하고 죄사함 받으라, 현대교회 회개없는 거짓 구원 팽배

 

쇼펜하우어는 하나님 나라의 증거인 성경을 확실하게 지식으로 받아들였고, 율법을 통해 지옥간다는 사실도 알았다. 예수의 일로 권면하다는 내용에는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는 핵심 교리가 내재되어 있음을 파악치 못했다. 구원은 회개한 사람에게만 성령이 죄 용서함을 깨닫게 한다. 설령 성경을 모두 외운다 할지라도 사람의 능력으로는 구원이 불가하다.

 

구세군 창시자 윌리암 부스가 회개없는 구원을 경고한 이유는 회개없이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교회도 회개없는 구원을 가르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쇼펜하우어 일기처럼 항상 분노할까? 오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온 목적은 죄인을 구원해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함이다. 거듭남, 영생, 구원, 천국 모두 같은 의미다.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왜 분노의 주님만을 바라봤을까? 영생의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면 예수그리스도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쇼펜하우어도 마찬가지였다.

 

쇼펜하우어가 지옥의 형벌을 피하기 위해 그토록 갈망했던 구원의 길은 2000년전 이미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뤄놨다.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성경에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예수) 담당시켰고이에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모든 죄악을 완벽하게 갚았다. 예수그리스도는 죽음이후 부활 승천했다. 이것이 죽음으로 2000년동안 지켜온 복음(good news)이며 구원이다.

 

 
             <the 대한일보 금요칼럼 수정보완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6/01/10 [10:57]   ⓒ ibiblenews.com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쇼펜하우어,구원,지옥,십자가,복음 관련기사목록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