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21계 금선탈각, 겉과 실체를 속인다는 전략’
병법21계 금선탈각(金蟬脫殼)은 자연계 최고의 아름다움과 극적인 변화을 보여주는 생존의 법칙이다. 3년에서 17년이라는 오랜시간동안 애벌레로 생존하면서 탈바꿈의 시기가 되면 금빛 날개의 매미로 변화한다. 나뭇잎을 먹던 벌레가 호랑나비가 되는 부활의 모습이나 애벌레가 매미가 되는 모습속에서 자연계의 신비로움을 본다.
금선탈각은 처세, 정치, 경영, 생존전략의 전반에 걸쳐 교훈을 준다. 병법으로서 금선탈각의 핵심은 변화가 아니다. 매미가 허물을 남기고 몸만 빠져 나가듯이 겉과 실체를 분리시켜 상대를 속인다는 계략이다.
이와 비슷한 병법이 허실전환(虛實轉換)이다. 허를 실로, 실을 허로 보여 상대를 교란시키는 방법으로 약한 것은 강하게 보이고, 강한 곳은 비워두는 전략이다. 애벌레에서 매미로의 화려한 부활은 인내와 고난을 통한 획기적 변화를 강조하기 위한 최근의 교훈이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면서 변화는 생존을 위한 핵심 화두이다.
‘17년동안 애벌레 생존가능 이유, 생물학적 절전모드’
매미는 3년과 5년, 7년, 13년, 17년 동안 나무뿌리의 수액만을 의존해 애벌레로 살아간다. 이처럼 오랜시간동안 애벌레로 생존이 가능한 이유는 계절이나 환경의 변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필요한 최소의 에너지로 근육과 신경 활동을 최소화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절전모드 상태이다.
매미는 수년동안 4-5번의 탈피를 하게 되는데 뿌리 굵기나 수액 압력, 토양온도, 미생물 등의 환경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때 비로소 탈피를 한다. 일반탈피 생물과는 다르다.
매미의 애벌레 생존기간은 모두 소수이다. 3,5,7,13,17이다. 생존기간이 왜 소수인지는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 다만 매미는 천적이 많아서 천적의 활동패턴이 짝수이기에 이를 피하기 위해 소수라는 추측도 하지만 확실치 않다.
한국에서는 참매미와 유자매미가 5년주기로 성충이 되지만 미국 중서부 매미는 17년동안 애벌레로 생존하다가 한꺼번에 수억마리의 매미가 성충이 되어 울면 공포영화를 방불케할 정도로 소음이 극심하다고 한다.
‘탈피 성장을 위한 필요 과정, 성찰의 삶이 곧 혁신이 삶 ’
금선탈각의 또 다른 교훈은 ‘내 껍질에 집착하지 말라’다. 매미를 비롯한 곤충류 등이 허물을 벗는 이유는 탈피전 한정된 골격에서 내부만 자라면 질식 압박으로 생명이 위험하기에 외골격의 확장을 위해서다. 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탈피다.
수차례의 탈피를 거쳐 애벌레가 매미가 되면 비행 기능을 얻고 천적들을 피하기 위한 방어력이 강화되고 면역부담이 감소된다. 그래서 탈피는 동물에게 주어진 생존의 전략이다.
뱀은 허물을 벗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은 탈피가 불가성을 말한다. 뱀의 허물은 육신의 변화를 가져오지만 궁극적으로는 내적 변화를 가져온다.
허물이란 고정된 낡은 생각, 성장에 불필요한 요소, 각자의 삶 속에서 성장을 저해하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을 의미한다. 변화의 삶이 혁신의 삶이다. 모든 생각과 습관 등 근본적으로 삶의 변화를 위한 깊이 있는 성찰의 삶이 곧 혁신의 삶이다.
자연계에서 곤충과 파충류의 성장과 변화에는 탈피라는 고난의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과 고통을 수반한다.
'동방최고 부자 욥 고난 통해 정금같은 신앙으로 변화'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였던 욥은 갑작스럽게 자식이 모두 죽고, 재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데다 몸에 악성종기가 나는 등 혹독한 시련이 허락되었다. 욥은 그 고난을 통해 처음 복보다 더큰 복을 받았다. 고난중에 욥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온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자연계의 동식물이나 사람에게 오는 고난은 사실상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축복이라는 점이다. 고난을 이겨냈을때의 상황이다. 고난은 변화를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하나라 폭군 걸 왕을 쿠테타로 몰아내고 은나라를 세운 탕왕은 세수하는 곳에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을 써놓고 날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변화의 삶을 살기위해 노력했다 한다.
‘구일신 苟日新’은 진실로 오늘 하루가 새로워졌다면, ‘日日新’ 매일 새롭게 살 것이며, ‘又日新’ 또 나날이 새롭게 산다는 뜻이다. 자기성찰의 삶이다.
성품과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자기성찰의 가장 좋은 길잡이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정보화와 첨단과학의 시대에 사는 사람 대부분이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피곤에 찌들어 있고 잡다한 정보와 오락과 TV에 짓눌려 있기에 그렇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사람도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침묵하고 있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만이 삶의 변화를 이끈다.
‘타락한 인간의 변화 시작, 회개 통해 십자가의 사랑 받아들이 것뿐’
변화는 자기와의 투쟁이다. 자기와의 투쟁은 겉사람과 속사람, 육신과 영혼간의 다툼이다. 근본적인 변화는 혼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내면의 변화는 바로 혼의 각성에서 시작된다.
사람의 육체는 지구상에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마음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DL 변화를 원한다. 불교는 인간의 집착이 고통을 만들기에 무상무아를 깨달아야만 고뇌로부터 벗어난다고 말한다. 유교는 마음의 수양을, 도교는 자연으로 회귀로를 강조한다.
성경은 최초의 인간 아담 창조시 죄 없는 온전한 상태였지만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창조주와의 관계가 끊어져 타락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성경은 회개를 통한 새사람으로 변화를 강조한다. 사람이 변화가 가능한 이유는 탈피하는 매미처럼 변화가 가능토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삶을 바라는 창조주의 사랑이다. 확실한 사실은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