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과 쑥 시베리아지역 원산지, 고조선 건국 선조 북방루트 이동 확실’
곰과 호랑이, 마늘과 쑥은 단군신화의 4가지 핵심 소재이다. 이중 한반도 전역에 퍼져있는 쑥과 매년 많은 양을 생산하는 마늘은 우리 민족의 사랑받는 주요 기호식품이다. 그런데 마늘과 쑥의 원산지가 한반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마늘과 쑥이 이미 토종화됐기 때문이다.
마늘(Allii Bublus)은 서부 아시아와 중국이 원산지이며 그와 비슷한 총백(Allii Fistulosi Bublus)은 시베리아가 원산지이다. 쑥은 서부 아시아와 시베리아가 원산지로 쑥과 마늘은 주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지에서 재배된다.
단군신화의 소재인 쑥과 마늘의 원산지 추적을 통해 우리조상이 한반도로 들어온 경로의 추정이 어느정도 가능하다. 우리민족을 우랄 알타이어족이라 하는 이유는 우랄산맥을 거쳐 왔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한반도로 이동해온 구체적인 경로를 비롯해 언어학적, 고고학적, 인류학적 관련 자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의 기원인 메포포타미아 지역과 인근지역의 문화와는 달리 기원전 2000년이전 시기이기에 한반도로 이주 당시 문자가 존재했으리라 추정은 하지만 남아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문화적으로나 언어학적, 풍습이나 생활습관, 구전 등을 통해 알아내는 방법이외는 없다.
‘아라랏산에서 시작된 동쪽으로 이주, 성경에도 기록’
대홍수이후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산에서 동쪽으로 이주를 시작한 셈족의 후예는 파미르고원과 천산산맥을 거쳐 알타이 산맥을 넘어와서 바이칼호수의 북쪽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극동인 한반도쪽으로 넘어 왔으리라 추정된다.
언어학적이나 추정루트에 우리민족의 풍습과 생활양식이 비슷한 민족이 현재도 여전히 남아 있고 신빙성이 높은 이유중 하나는 마늘과 쑥의 원산지이다.
서부 아시아와 시베리아가 원산지인 마늘과 쑥이 고조선의 건국신화에 주요 핵심소재로 쓰인데에는 이주 과정에서 보관과 소지가 편하고 일상적으로 매우 긴요하게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마늘의 주요성분 알리신은 항균, 항산화, 항염 작용을 비롯해 항암, 면역력 강화 등에 효과가 뛰어나고 쑥은 소화기능개선과 간기능 강화 등에 효과가 좋은 건강식품이다. 이후 마늘과 쑥은 우리 민족의 기호식품이 됐다.
‘욕단은 고조선 단군왕검인가?, 아니면 남아라비아에 남았는가’
욕단이나 그자손이 우리민족 조상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욕단이 동편산으로 이주한 시기가 고조선의 건국 시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바벨탑 사건 당시 생존했던 족장 노아와 셈-아르박삿-셀라-에벨의 아들인 벨렉과 욕단이 셈족계열이다.
욕단과 그아들이 거하던 곳이 메사와 스발로 가는 동편산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이들만이 동편으로 이동했기에 욕단이 고조선을 세운 단군으로 추정한다. 성경은 동편의 구체적인 장소는 기록치 않았는데 그들이 계속 이동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고대DNA나 고고학적, 물질문화의 연결증거, 언어나 명칭의 유사성에서 욕단은 오히려 남아라비아에서 거주했다는 증거에 힘이 더 실린다. 그러면 고조선을 건국했던 그들은 누구일까?
욕단이 한반도로 이주하고 그후손이 남아라비아에 남았을 가능성은 없는가?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왜 한반도의 물질문화와 중동 특유이 물질문화의 유사성이 떨어지는가. 그이유는 간단하다.
메소포타미아지역은 대홍수이전의 문명이 사라졌지만 이를 경험한 노아의 후손이 살아있기에 홍수이전 문명을 그대로 복원해 갔을 가능성이 높다. 홍수이전 문명 당시 주변 자원이 그대로 남아있기에 복원이 가능했다.
반면에 중동을 떠나 동쪽으로 이주했던 집단은 홍수이전 문명의 경험이 없기에 새로운 물질문화를 이룰 수밖에 없다. 또 문화를 이룰 자원도 중동와 시베리아를 비롯한 한반도와는 확실하게 다르다. 욕단이나 그후손이 한반도로 넘어왔을지라도 중동의 물질문명과는 다른 문명을 이룰 수밖에 없다. 고고학이나 물질문명의 단순 비교만으로는 욕단이 남아라비아에 남았는지, 한반도로 이주했는지 여부를 결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승만정권때부터 단군 가상인물로 보기 시작, 구한말 국사교과서 단군-인간’
건국신화는 모든 국가에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부정하는 사례는 드물다. 제왕운기와 단기고사에는 고조선을 지배했던 1대 단군왕검부터 47대 단군 고열가까지의 국가 존속 통치기간이 1천년이 넘었다. 우리민족의 역사를 언제부터 부정하기 시작했을까?
서울대 초대법학대학장을 지낸 최태영박사는 실증사학을 내세워 단군을 가상인물로 보기시작한 시기가 이승만정권때부터라고 지적하며 동몽선습이나 세종실록에 단군이 실존인물로 기록됐기에 우리 민족은 단군을 실존인물로 받아들여 왔다고 지적했다.
1910년이전인 구한말 검인정 역사교과서인 고유상의 ‘오천년조선역사’의 상고사에도 조선의 시조는 단군이며 신이 아닌 인간이라고 기록했다.
일제 강점기 데라우치총독은 전국 향교와 서원, 개인 집까지 뒤져 단군 관련 역사책을 압수해 총51종 20여만권을 모두 불태웠다고 알려졌다. 해방이후에도 일제 식민사관에 물든 역사학자들이 단군 고조선을 신화로 만들면서 기원전2333년 건국했던 고조선이 사라졌다.
‘개천절 건국 시조와 그 윗대를 거스려 족보 알아보는 때’
단군 왕검이 개국51년만에 마리산(마니산)에 제천단인 첨성단을 쌓아 하나님께 제사를 올렸다고 기록이 존재하고 아직도 첨성단을 비롯해 제단이 남아있다. 단군이 실존인물이라는 의미다.
개천절은 한민족의 기원을 알아보며 그 윗대에 누구인지 알아보는 절기다. 뿌리를 알지 못하는 민족은 성장하지 못한다. 한민족의 뿌리는 단군왕검의 고조선에서 시작됐고 단군왕검은 셈의 5대손 욕단으로 추정된다. 욕단의 조상은 셈이며 그 위에 노아다. 노아는 아담의 10대손이다. 이것이 한민족의 계보이다. 이곳에 각 성씨의 계보를 붙이면 완벽한 족보가 된다.
심리학자이며 정신과 의사이었던 칼 융은“역사보다는 신화가 더 진실을 반영한다.”고 말한바 있다. 신화속에 역사적 사실과 진실이 감춰져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