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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흔들릴 때 무엇을 잡아야 하나?
토스토엡스키 ‘죄와 벌’, 그리스도 사랑 제시
 
박성민   기사입력  2026/02/01 [14:21]

   세계적 명작 죄와 벌공리주의와 초인사상 넘어선 그리스도 사랑 묘사

 

삶이 태풍 앞에선 나무처럼 흔들릴 때 무엇을 잡고 의지해야 할까?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엡스키는 그의 역작 죄와 벌을 통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고백했다.

 

죄와 벌은 주인공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가 하숙비도 몇 달채 밀려 배고픔 속에서 계획적으로 전당포 노인을 살해한 후 양심의 찔림과 자기합리화를 오가며 고뇌하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죄를 인정한 이유는 철학도, 이성도, 논리도, 법도 아닌 소냐라는 여인의 사랑이었다. 도스토엡스키는 길거리 여인인 소냐의 실천적 사랑을 통해 변함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묘사하면서 사랑을 받은 자만이 변화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죄와 벌에 담았다.

 

도스토엡스키는 죄와 벌은 당시 유럽의 지배사상이었던 경험론의 공리주의와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초인사상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묘사해 세계적인 명작이 되었다.

 

영국 경험론의 영향을 받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공리주의는 행복이라는 최고 기준에 따라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상이다. 니체의 초인(위버멘쉬)’은 기존가치를 넘어선 고정된 존재가 아닌 스스로 자신을 극복하여 가치를 창조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말한다.

 

  사상 무장 불구, 노파살인 괴로워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양심, 누구 것인가?’

 

공리주의와 니체의 초인주의의 사상에 심취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위대한 인물은 법을 초월할수 있고, 악한 노인을 죽임으로 수많은 사람을 살릴수 있다면 그 살인은 정당하다는 논리에 빠졌다. 전당포 노인을 와 같은 백해무익한 사람이라는 논리로 자신의 살인을 합리화시켰다.

 

이성과 논리로 무장된 자기 합리화에도 불구하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양심은 살인 증거물을 숨기고도 3일동안 혼수상태에 빠지는 등 불안과 자기혐오, 죄의식에 극심하게 시달렸다. 사상으로 무장된 강력한 자기 합리화에도 불구하고 양심은 라스콜리니코프를 위로와 변호하지 않고 살인을 강하게 질책하는 법으로 존재했다.

 

각 사람 안에 존재하는 양심은 도대체 왜, 어떻게 각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해 평가하고 질책을 할수 있을까? 양심은 심지어 아무도 없이 극비리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자신을 질책하며 책망한다. 내 안에 존재하는 양심이 내 소유가 아님을 말해준다.

 

           양심, 진화의 산물 아닌 창조주가 인간에게 심어 놓은 율법

 

사람의 양심이 진화의 산물이라면 범죄에 대해 합당한 핑계를 논리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진화의 근본이 개인의 생존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양심은 손으로 직접 만질수 없으나 내면에 실존하며 각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 재판자의 입장에서 책망하고 칭찬도 한다. 양심은 각 사람이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삶, 인간적인 삶을 살수 있도록 심어놓은 고도의 율법이다. 최첨단 AI로도 사람의 행동에 대해 양심적인 판단은 불가하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을 정당화한 사상을 의지해 노인을 살해했지만 양심의 괴로움과 고통에 빠져있던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에게 처음으로 살인죄를 고백하게 된다.

 

도스토엡스키는 소냐 앞에 죄를 고백하는 라스콜리니코프를 통해서 모든 인간은 타락한 본성인 죄성을 안고 태어났기에 그 죄를 그리스도 앞에 자백하고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죄와 벌에서 소냐의 사랑은 변함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한다.

 

     토스토엡스키, 인간 모두 죄성갖고 태어나 그리스도 사랑받아야 메세지

 

성경은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났다고 선언했다. 죄인이란 얼마만큼 죄를 지었는지, 범죄의 많고 적음이 아닌 죄성을 안고 태어났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신분을 말한다. 죄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회개후 복음을 믿는 방법이외는 없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다.

 

그러면 각 사람의 마음에 존재하는 양심은 왜 죄를 지적할수 있을까? 그렇다. 양심은 마음에 새긴 율법이며 고도의 전문화된 도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심의 법은 인간상호간 저지르는 살인, 도둑질, 거짓말 등에는 작동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의무에 대해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사실상 무기력하다. 10계명중 창조주와 관련된 1-4계명에 인간의 양심은 무감각하다. 이처럼 양심은 무디어지거나 마비되고, 약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디있느냐고 심상하게 말한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에게 살인죄를 자백하고 형벌을 받기위해 경찰서로 자진 출두한다.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를 정죄하지 않고 형기를 마칠때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했다. 영원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미한다. 성경은 창조주를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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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2/01 [14:21]   ⓒ ibib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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