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필수요소 육신 본능 선하다, 죄성과 오해할수도’
육신의 본능과 육신의 소욕이 비슷한 뜻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의미상으로 큰 차이가 난다.
본능의 사전적 정의는 모방없이 태어날 때 부터 유전적으로 지니는 선천적 행동 경향을 의미한다. 반사와 같은 단순반응부터 식욕, 성욕, 수면욕, 성취욕, 방어본능 등을 포함한다. 본능은 선하다. 본능은 육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현상이다. 여기에서 육신은 몸 body를 말하고 죄성과는 다르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할수록 육신의 본능과 죄성을 오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로마서7장의 사도바울이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는 기록 때문이다. 물론 그이외 구절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말씀으로 인해 육신의 본능과 죄성을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죄와 죄성, 육신 관계의 핵심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로마서 7장을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에 육신 자체를 죄성으로 여기는 사례가 적지 않는데 오해다.
육신의 본능(Physical Instincs)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 준 생존과 삶을 위한 필수적인 성향이며 본질적으로 선하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피곤하면 주무시고, 배고파서 먹으셨다.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셨기에 육신의 본능은 선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마서7장 ’나‘는 몸이 아닌 죄성, 선한 본능에 욕심이 첨가되면 죄’
로마서7장의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에서 육신은 고기덩어리 즉 body가 아닌 죄성(niv:the sinful nature)을 뜻한다. 죄성은 신약에는 존재치 않은 용어로 죄와 육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었다. 죄가 몸 안이 아닌 육체 안에 있다고 하여 죄의 활동무대가 육체임을 알려준다.
육신이라는 뜻의 헬라어 샤륵스(Sarx)는 몸(body,헬:소마)이 아닌 죄성이 활동하는 영역를 말한다. 죄성이란 아담이 범죄한 이후 타락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내적 성향, 인간 안에 존재하는 죄의 성향, 죄를 쉽게 선택하는 성향을 말한다. 죄(sin, 헬라어 Hamartia:과녁을 벗어남)는 하나님의 법을 벗어난 상태이면서 그 세력을 말한다.
로마서“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는 죄와 죄성, 육신의 상관관계인 죄의 발생 메카니즘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준 아름다운 선한 몸의 본능이 죄성과 만나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식욕은 생존에 필수적인 성향이지만 식욕이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이게 되면 죄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탐식을 일으키게 된다. 소유욕과 성취욕이 죄성과 만나면 탐심을 일으킨다. 탐식과 탐욕은 모두 죄다. 그 이외도 마찬가지다. 선한 몸의 본능이 자기중심을 주장하는 죄성과 만나게 되면 죄가 나온다. 이 메카니즘을 살펴보면 죄를 짓기전에 피할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는다. 욕심은 육신의 본능이 죄성을 만나 자기중심으로 변한 상태다.
죄는 자체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기에 인간의 영혼을 직접 파괴할수 없다. 반드시 인간의 육신(NKB:Flesh,죄성)이라는 통로가 있어야 능력 발휘가 가능하다. 죄는 죄성을 통해 나타나기를 원한다.
‘성도의 지배적 자아 새사람, 옛사람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죄성은 율법과 계명을 보면 지킬려는 의지보다는 거역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고백한 사도바울은 거듭난 혼의 본체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한다.
내 안에 거하는 죄성이 죄의 세력과 결탁하여 죄를 짓게 되는데 죄를 짓는 것은 내가 아니라고 고백한 사도바울의 ‘내가’는 성경의 고린도후서의 새로운 피조물인 new self를 말한다.
존 칼뱅은 로마서 주석을 통해 “성도의 지배적 자아인 새사람(the new self)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육신의 잔재로 남아있는 죄의 세력이 죄를 짓게 만드는 영적 전쟁을 한다”고 고했다 새사람인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는 이유는 육신의 잔재로 남아있는 죄의 세력이라고 정확하게 짚었다.
마틴 루터는 “성도는 법적으로 완벽한 의인이지만 이땅에 살아있는 동안 육신의 장막을 입고 있기에 죄성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말했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영적, 법적, 생물학적, 본성적으로 형벌아래 놓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부패한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법적 죄의 책임이 지워졌고 성령의 임재로 죄성으로 오염됐던 육신을 날마다 말씀으로 씻어내어 깨끗케되는 삶을 살수 있는게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갈라디아서2장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선언은 엣사람(죄성)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선언이다. 골로새서3장의 ‘새사람을 입었다“는 기록은 법적으로 옛사람이 이미 장사되고 새사람을 입었다는 선언이다. 로마서 6장에도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기 때문이라고 확실하게 밝혔다. 죄에 대하여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옛사람이란 죄성으로 본성 전체 오염된 사람, 성령의 소욕과 죄성 상대적‘
옛사람(old self)은 누구인가? 마틴 루터는 옛사람 전체를 죄성으로 인식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죄성이 인간 본성 전체를 오염된 사람, 칼빈은 전인격이 타락된 사람이라고 말했다. 옛사람(old self) 전체가 죄성으로 봐도 된다. 옛사람이 삽자가에 못박혔기에 죄성도 못박혔다는 의미다. 그런데 왜 인간은 죄를 짓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게된다.
그 이유는 옛사람의 잔재인 기억과 습관, 사고방식이 육신에 남아있어 생각과 마음에 작용을 하기 떄문이다. 새사람, 새자아(the new self)는 성령과 연합된 새사람 혼의 주체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한다.
갈라디아서“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새사람이 성령을 좇으면 당연히 육체의 욕심 즉 죄의 본성 the sinful nature이 이뤄지지 않는다. 상대적이기에 그렇다. 소욕은 이루고자하는 바이다. 육체의 소욕은 NIV에서 the sinful nature desires 즉 죄의 본능이 원하는 바를 말한다. 내몸이 원하는 바가 죄라고 오해하면 안된다. 몸은 그저 몸이다.
그리스도인이 새사람이 되지 않은 채 옛사람으로 산다면 성령의 도우심으로도 죄의 성향을 이겨낼수 없다. 새사람으로 바뀌었기에 성화가 가능하다.
신약의 대부분이 육신과 성령을 대조시킨 구절에서 육신은 ’the sinful nature‘이다. 몸으로 해석하게 되면 신앙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죄와 죄성, 육신과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알면 신앙생활의 상당부분이 해결된다.